1.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시고 오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궤마저도 하나의 우상처럼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데, 전쟁에서 지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해야 했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고 하나님의 법궤를 전쟁터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뜻대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이스라엘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당시 이스라엘과 블라셋 사이에서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지고, 블레셋이 이기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하지만 드디어 하나님의 법궤가 스스로 70년 만에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는 상황을 사무엘 하 6장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70년 만에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옵니다. 다윗은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또한 잣나무로 만든 온갖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 앞에서 연주하며 풍악을 울리면서 준비하였습니다. 다윗은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군대를 총동원하여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오는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 소들이 갑작스럽게 뛰는 바람에 하나님의 궤가 땅에 떨어지려는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2.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 웃사가 그 자리에서 죽다.
하나님의 궤가 땅에 떨어지려고 하자,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가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잡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곳에서 웃사를 치므로 웃사가 하나님의 궤 바로 옆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궤가 땅에 곤두박질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던 것이었을까요? 웃사가 했던 행위는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하지 않았나요? 정말 웃사의 행위가 죽을 정도로 잘못했던 것이었던 걸까요? 우리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 천천히 문제를 들여다보면 세상 사람들이 문제를 발생시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우리 스스로 문제를 발생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를 악화시키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열심히 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교회를 문제를 일으킵니다. 의도도 좋고 내가 열심히 하고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면 끝인가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의 열심, 정성, 최선이 하나님께서 기쁘지 않으신다면 더욱더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아무리 나의 좋은 의도, 열심, 정성, 최선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사무엘 하 6장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이용했기에 이스라엘을 떠났던 하나님, 하나님의 방법으로!
웃사의 문제는 그의 능력과 힘과 강함으로 법궤를 막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났던 이유는 70년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우상으로 만들고, 조종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바대로 이용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는데, 아무리 그것이 무의식적이고 무지로 인함이었을지라도 여전히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의 궤를 붙잡으려고 했기 때문에 웃사가 죽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는 방법, 내가 원하는 방법 안으로 하나님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웃사의 사망사건 이후에 하나님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이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그 집에 복을 주시고 함께하셨기 때문에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다윗의 성까지 모셔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벧에돔을 통해서 궤를 가지고 오기를 원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기독교 인들은 왜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까 하면서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왜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을까를 분노해야 합니다. 세상과 다른 하나님이 원하는 방법, 하나님이 원하는 뜻에 맞게 사는 것이 바로 온전한 삶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내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 삶이셨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으로 매일매일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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